600년 역사 품은 괘고정수와 이선제 부조묘

광주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의 자연유산
광주에는 국가가 지정한 자연유산 8곳이 있습니다. 자연유산이란 오랜 세월에 걸쳐 자연이 만들어낸 뛰어난 경관, 지형, 지질 등을 의미합니다. 그중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에는 특별한 자연유산인 괘고정수와 역사적 의미를 지닌 이선제 부조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만산마을과 괘고정수의 의미
만산마을은 수많은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싸인 곳으로, 이름 그대로 '만산(萬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곳은 조선 세종 시대의 문신 필문 이선제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필문 이선제는 광주 도로명 '필문대로'의 주인공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마을 입구에는 수령 약 600년으로 추정되는 왕버들 나무, 괘고정수가 서 있습니다. 이 나무는 1998년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2025년 6월에는 광주광역시 자연유산으로 공식 인정받았습니다. 높이 약 15m, 가슴 높이 둘레 약 1.7m, 수관 폭이 13m에 달하는 괘고정수는 마을의 상징이자 뿌리 깊은 역사를 간직한 나무입니다.
괘고정수에 얽힌 전설과 역사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이선제가 직접 이 나무를 심었으며, "이 나무가 죽으면 가문도 쇠락할 것"이라는 예언을 남겼다고 합니다. 괘고(掛鼓)는 '북을 건다'는 뜻으로, 조선시대 광산 이씨 가문 자손들이 과거시험에 급제할 때 이 나무에 북을 걸고 마을 잔치를 벌이며 축하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북을 거는 정자나무'라는 의미의 괘고정수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또한 1589년 정여립 모반 사건과 관련된 기축옥사 때, 이선제의 5대손 이발이 연루되어 가문이 큰 화를 입었고, 괘고정수도 서서히 말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수백 년 후 이발의 억울함이 밝혀지고 가문의 명예가 회복되자 괘고정수도 다시 새잎을 틔우며 생명을 되찾았다고 전해집니다.
필문 이선제 부조묘와 그의 업적
괘고정수와 함께 만산마을의 역사적 자산인 필문 이선제의 부조묘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선제는 1411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1419년 문과에 급제해 조정에 진출, 집현전 학사로 활동하며 세종대왕 시대 학문과 정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태종실록, 고려사, 고려사절요 편찬에도 참여한 그는 광주 지역 발전에도 힘썼습니다.
특히 광주목이 무진군으로 강등되었던 시절, 이를 다시 광주목으로 승격시키는 데 앞장섰으며, 희경루 건립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광주 최초의 실질적 향약인 '광주향약'을 실시해 지역 사회의 풍속을 세우는 데 기여했습니다.
부조묘는 나라에 공을 세운 인물의 신주를 영구히 모시는 사당으로, 불천위라 불립니다. 불천위는 일반 조상과 달리 국가가 영구 제사를 받도록 지정한 인물을 뜻합니다. 부조묘 뒤쪽 100m 지점에는 이선제의 묘도 위치해 있습니다.
한때 도굴되어 일본으로 불법 반출되었던 이선제의 묘는 2017년 8월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그의 생몰년과 행적이 적힌 위패는 2018년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소장 중입니다.
600년 세월을 잇는 문화유산
광주 남구 원산동 만산마을의 괘고정수와 필문 이선제 부조묘는 600여 년 동안 이어져 온 선조들의 삶과 정신, 그리고 지역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이곳은 광주가 품고 있는 깊은 문화적 가치와 선조들의 지혜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600년의 세월을 견뎌온 괘고정수와 역사적 인물 이선제의 부조묘는 오늘날에도 지역민과 방문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하며, 광주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