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로 여는 특별시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반도체 클러스터라는 새로운 기회를 바탕으로 지역 산업의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산업 현장에서 축적한 경험을 지역 인재 양성과 첨단 패키징 기반 구축에 쏟고 있는 맹종선 광주전남반도체공동연구소 교수가 있다.
맹 교수는 전남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광주과학기술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수도권과 충청권의 반도체 산업 현장을 거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호남권 반도체 생태계 구축에 힘을 보태고 있다. 현재 광주전남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첨단 패키징 기반 구축과 후학 양성을 맡고 있다.
구리 배선에서 시작된 반도체의 길
맹 교수와 반도체의 인연은 손톱만 한 칩 안에서 도시의 도로망처럼 미세하게 얽혀 작동하는 구리 배선에서 시작됐다. 전남대 금속공학과 학부와 석사 과정에서 금속 박막을 연구한 그는 재료가 산업의 핵심 기반이 되는 시대가 올 것으로 판단했고, 2000년 하이닉스반도체에 입사했다.
머리카락 굵기의 수천 분의 일에 불과한 구리 배선 공정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반도체 기술에 깊이 매료됐다. 하이닉스반도체와 삼성전자를 거치며 산업 현장을 경험했지만, 생산 현장에서 마주하는 문제의 본질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는 갈증은 쉽게 해소되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서른 살에 안정된 직장을 내려놓고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했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나노와이어에 전극을 붙여 트랜지스터의 특성을 밝히는 연구에 몰두했고, 첫 논문의 게재 승인 소식도 이 시기에 접했다. 그는 당시의 선택을 자신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결정 가운데 하나로 평가한다.
맹 교수의 삶의 신조는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하고, 현재 하는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산업 현장과 학문 연구를 오간 그의 이력에서 반도체는 단순한 직업을 넘어 오랫동안 이어진 연구 주제이자 삶의 방향으로 자리 잡았다.
호남권을 잇는 공동연구소
광주전남반도체공동연구소는 2023년 5월 교육부의 권역별 반도체 공동연구소 공모사업에서 전남대가 주관기관으로 선정되면서 출발했다. 목포대와 순천대가 컨소시엄으로 참여했다.
사업에는 400억 원이 넘는 국비를 비롯해 광주시와 전남도, 두 지역 교육청, 지역 기업의 매칭 투자가 더해졌다. 특정 대학에 머무는 연구시설이 아니라 호남권의 교육기관과 지방정부, 산업계가 함께 구축하는 공동 기반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연구소는 대학생과 기업 재직자를 위한 실습, 산학 공동연구, 초등학생과 중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교육을 한곳에서 수행하는 원스톱 플랫폼을 지향한다. 반도체를 처음 접하는 학생부터 산업 현장에서 기술을 다루는 재직자까지 폭넓게 연결하는 구조다.
지역에서 배우고 연구한 인재가 고향을 떠나지 않고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과 연구, 산업을 하나의 흐름으로 묶는 것이 연구소의 핵심 역할이다.
지역 인재를 담아낼 산업 생태계
맹 교수는 그동안 지역에 인재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뛰어난 인재를 담아낼 산업 기반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지역의 우수한 이공계 인재들이 반도체를 연구하고 관련 기업에서 일하기 위해 고향을 떠나야 했던 현실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을 반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설명했다. 우수한 엔지니어가 전남광주에 뿌리내리려면 경력 성장과 삶의 질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 조건은 지속 가능한 경력 성장의 기회다. 엔지니어가 단 하나의 기업만 바라보고 지역으로 내려오는 구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여러 기업 사이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기술 역량을 계속 높일 수 있는 촘촘한 기업 생태계가 형성돼야 장기적인 정착이 가능하다.
두 번째 조건은 가족의 행복을 뒷받침할 생활 기반이다. 자녀 교육을 비롯해 주거와 의료, 문화 환경이 함께 갖춰져야 근로자와 가족이 지역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할 수 있다. 맹 교수는 수도권의 높은 주거비와 긴 출퇴근에 지친 엔지니어들에게 전남광주가 경력과 생활의 균형을 함께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에너지 사람 공간을 갖춘 전남광주
맹 교수는 전남광주가 반도체 클러스터의 적지인 이유로 에너지와 사람, 공간을 제시했다.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핵심 기반이 지역에 고르게 갖춰져 있다는 판단이다.
- 에너지 해상풍력과 태양광을 비롯한 재생에너지 기반과 영광원전의 안정적인 전력 공급 능력을 갖추고 있다.
- 사람 전남대와 광주과학기술원을 중심으로 우수한 이공계 인재가 배출되고 있다.
- 공간 반도체 산업에 필요한 용수와 산업용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여건이 있다.
- 교통 공항과 고속철도를 잇는 교통망을 활용할 수 있다.
이 요소들은 대규모 전력과 용수, 전문 인력, 넓은 산업용 부지, 원활한 이동 체계가 필요한 반도체 산업의 특성과 맞닿아 있다. 각각의 기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것이 클러스터 조성의 중요한 과제로 제시된다.
첨단 패키징이 만드는 경쟁력
첨단 패키징은 생산된 반도체 칩을 연결하고 보호해 필요한 성능을 구현하는 핵심 영역이다. 맹 교수는 호남권 반도체 클러스터가 메모리 생산시설과 인접한 앰코 등 첨단 패키징 기업과 상호 보완적인 상승효과를 내기에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전남광주의 인공지능 기반 시설을 결합하면 반도체 설계에서 패키징과 실증으로 이어지는 차세대 생태계를 완성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개별 공정만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련 기술과 기업이 서로 연결되는 구조를 갖춰야 지역 산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의미다.
맹 교수가 광주전남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첨단 패키징 기반 구축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와 맞물린다. 연구와 교육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산업 현장의 수요를 반영하면 학생과 재직자가 실제 공정에 가까운 환경에서 기술을 익힐 수 있다.
기업의 문제를 교재로 삼는 교육
맹 교수는 반도체 인재 교육이 이론 전달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생산 현장에서 실제로 겪는 공정 문제와 기술 과제를 교육의 교재로 삼는 산학 프로젝트가 필요하다는 제안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과 기업이 함께 활용할 수 있는 공유 기반을 구축하고, 채용과 연계되는 교육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교육 현장과 산업 현장 사이의 격차를 줄여 수료자가 기업에 들어간 뒤 곧바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취지다.
교육을 받은 지역 인재가 기업에 취업하고, 기업의 기술 과제가 다시 대학과 연구소의 교육과 연구로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연구소는 대학생과 재직자 교육은 물론 초·중·고 학생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 기반을 넓혀갈 계획이다.
클러스터 성공을 위한 세 가지 열쇠
맹 교수는 클러스터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 앵커 기업 유치와 신속한 행정 지원, 인재 선순환 체계의 조기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시했다.
- 앵커 기업 유치
대형 파운드리와 같은 제조 기업이 들어서야 소재·부품·장비 협력사가 함께 입주할 수 있다. 기업과 일자리, 인재가 순환하는 구조를 만들려면 지방정부와 민간이 힘을 모으는 적극적인 민관 합동 유치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 속도감 있는 행정 지원
반도체 산업은 부지 조성과 전력·용수 기반 확보, 각종 인허가의 속도가 기업의 투자 시점을 좌우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원스톱 행정 체계를 활용해 결정과 집행 속도를 높이고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 인재 선순환 체계 구축
클러스터 가동 시점에 맞춰 현장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실무형 인재를 미리 양성해야 한다. 연구소는 지역 중소·중견기업이 안고 있는 기술적 난제를 함께 해결하는 협력 기관의 역할도 맡아야 한다.
세 가지 과제는 각각 분리된 사안이 아니다. 앵커 기업이 들어오면 협력사의 입주와 고용이 이어지고, 신속한 행정은 기업의 투자 실행을 뒷받침한다. 연구소가 배출한 인재가 이들 기업에서 일하며 기술을 축적하면 지역 산업의 기반도 더욱 단단해질 수 있다.
사람이 모이는 반도체 도시
맹 교수의 개인적인 연구 목표는 광주전남반도체공동연구소를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전국 최고 수준의 연구·교육 거점으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첨단 장비를 활용한 실습과 기업 과제 중심의 교육, 산학 공동연구를 통해 호남권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을 세우겠다는 구상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학생이 지역 대학에서 반도체를 공부하고, 공동연구소의 첨단 장비로 실습한 뒤 클러스터에 입주한 기업에 취업하는 모습이다. 그 인재가 지역에서 가정을 이루고, 다음 세대가 다시 같은 지역에서 꿈을 키우는 흐름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가 만드는 새로운 특별시는 공장 몇 곳을 늘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교육과 연구, 기업과 일자리, 주거와 문화가 맞물려 사람이 모이고 머무는 도시를 만드는 일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추진하는 반도체 산업의 성과가 기업과 연구기관에만 머물지 않고 시민의 일자리와 생활 여건 개선으로 이어지는 것이 최종 지향점이다. 산업 현장과 연구실을 두루 경험한 맹 교수의 제언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시설 중심의 사업을 넘어 사람을 키우고 지역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